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회개, 그 때와 목적" 2014년 3월 6일 새벽기도회 설교 (사순절2)
2014-03-06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9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40306 목요일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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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편 1~17절, 사순절(2) 회개, 그 때와 목적
* 설교 음성 : http://www.4shared.com/mp3/ChKgZB14ce/20140306__2_.html (클릭)
사순절 두 번째 말씀으로, ‘회개, 그 때와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이 시편의 고백은 본문의 표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후 그를 찾아온 선지자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을 때 다윗이 하나님께 드렸던 회개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저와 여러분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기도이기에, 시간관계 상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다만 회개에 관한 두 가지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다윗이 회개하는 시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다윗이 언제 이 기도를 드렸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이 시편의 표제가 바로 그 회개의 시점을 정확히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요, 그것은 놀랍게도 ‘나단 선지가가 그에게 왔을 때’였습니다. 제가 ‘놀랍게도’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이러한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기억을 한 번 더듬어 보십시오.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으로 권면하실 때, 그 첫 경고에 바로 회개로 이어진 경우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우리의 모습이 다소 명확하지 않다면, 부모님의 꾸중이나 책망을 들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부모가 무언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이 틀렸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첫 말씀 앞에 바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경우, 적어도 제 개인의 경험으로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은 제가 살던 동네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하신 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항상 세 번 이상의 경고의 말씀을 먼저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준석아, 이번이 첫 번째 경고다. 이제 두 번째야. 한 번 더 똑같은 잘못을 하면 이제 스스로 가서 회초리를 구해 와야 한다.”라고 늘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 마지막 회초리까지 기어이 가고야 말았었지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더 자주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책망은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 아예 들리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나단을 보내도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도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무감각하기 일쑤이고, 혹 은혜가 되어도, “그래 저것은 아무개를 위한 말씀이구나. 그 아무개가 잘 듣고 회개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데 그 말씀을 적용할 때도 많습니다. 죄에 빠지고, 또 그래서 깨어 있지 못하기에 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기어이 하나님의 심판의 회초리가 우리의 삶에 와서 닿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뒤늦게 하나님을 찾고 용서를 구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생각할 때, 오늘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물론 다윗 역시 우리와 같은 성정이기에, 처음에는 나단의 경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단이 들려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인 줄도 몰랐습니다. 더구나 나단의 방문 자체가 밧세바를 통해 아들을 얻은 다음, 곧 적어도 1년은 족히 지났을 때였으니, 다윗의 회개 역시 얼마나 뒤늦은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회개가 다 이렇습니다. 숱한 경고와 책망의 음성이 무시되고, 내가 행한 죄의 씨앗이 내 삶에 열매를 맺을 때까지도 그러한 어둠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은 다 무의미하며, 다 죽은 시간들일 뿐입니다. 결국 다윗의 그 아들은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죽게 되고, 이후 그의 가정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회개는 이보다 더 부족한 모습일 때가 많지 않습니까?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다윗과 같이 여러분이 뿌린 죄의 씨앗이 여러분의 영적 어둠 가운데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통보를 무시하다가 내 삶의 한 부분이 다 망가지고 부서져 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러분 부디 하나님의 선언이 선포되었을 때, 바로 그때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때가 바로 회개의 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바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가장 좋은 회개의 시간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개에 관하여 생각해 볼 또 한 가지의 측면은 바로 회개의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오늘 시편의 말씀과 같이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의 이유를 단지 그 죄의 값을 조금이라도 모면코자 하는 데에 둡니다. 아예 처벌을 받지 않으면 더 좋고, 받더라도 감하여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회개합니다. 하지만 오늘 다윗의 회개를 상고해 볼 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른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다윗의 기도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간구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내 죄를 씻어주시기를 원하는 간구입니다. 1절, 2절, 7절, 9절 모두 이 내용입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죄가 사해지기를 구함과 동시에 다윗은 10절에서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받아야 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것을 경감하고자 하는 어떤 노력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회유하고 설득하기 위한 번제나 화목제도 드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진정으로 용서받고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벗어버리고 다시 의로운 모습을 회복하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는 처벌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회복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은 죄의 대가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와 내 영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세 차례의 경고가 다 끝나고 결국 회초리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저의 관심은 늘 ‘몇 대를 맞느냐’였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이거, 저거 하겠습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준석아, 알겠다. 이제 내가 용서하마. 다시는 그러지 말거라.”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회초리를 거두시는 것이 아니라, 꼭 정한 회초리의 대수를 채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용서는 했다, 그 잘못, 없던 일로 하마. 비록 잘못을 범했지만, 여전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나는 너를 기뻐한다. 그런데 잘못의 대가인 매는 맞자. 맞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 그게 아버지의 셈법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그게 늘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에 감사할 다름입니다. 회개의 목적은 형벌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그 형벌을 받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의 목적은 죄의 대가를 면제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받을 형벌을 다른 누구에게 전가하거나 함께 나눠 받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마땅히 치러야 할 죄의 결과를 모두 용서받는 것이 회개의 목적이어서는 안 됨을 오늘 다윗의 회개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윗도 이러한 실수를 범한 적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인구조사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다윗이 다시 섰을 때,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세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그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 또 하나는 다윗이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그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삼하24:13). 여러분 같으면 이 중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그때 다윗은 마지막 세 번째 옵션, 곧 전염병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이유가 너무나 황당하고 뻔뻔하였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고 자신의 백성들이 대신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더 풍성한 긍휼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14절) 죄 없는 사람들을 볼모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시험한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 하나님의 자비 없는 형벌이 내려졌습니다. 다윗이 인구를 조사한 지역에 해당하는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7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강력했던지, 심판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차마 더 보지 못하시고 천사를 향하여 ‘네 손을 거두라’고 명령하실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제야 다윗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죄 없는 이들을 향한 심판을 멈추시고,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라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처합니다. 그제야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게 되고, 결국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는 성전터인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물론 다윗은 왕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대한 값을 치르고 구입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열매를 스스로 감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차마 회개하지 못하십니까? 그 책망과 처벌이 너무 무거울까 하여, 그래서 내 삶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괴로우십니까?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그래서 죄를 다 도말하고 지우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변함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주님께 여러분의 삶을 내어드리십시오. 온전한 사랑 안에 거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주님께 혼나고 매를 맞는다고 하여 우리와 주님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향한 그 사랑 역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회개하면 반드시 회복의 길, 더 나은 길을 보여주십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질 때, 그 망가진 삶을 다시 일으켜 더 나은 모습으로 회복케 하십니다. 매를 다 맞으십시오. 끝까지 다 맞으실 각오로 주님을 구하십시오. 그 고통은 잠시입니다. 참된 회개의 열매를 주님이 주십니다.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가 죄의 결과로 죽게 되었지만, 진정한 회개 가운데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온 다윗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솔로몬을 다시 밧세바와의 관계 가운데 허락하심으로써,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에 온전히 응답하셨습니다.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또 피해자인 밧세바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어쩌면 너무나 안이한 결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연약하여 늘 죄 가운데 허덕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을 결코 그 죄의 결과로 망가진 채 내버려두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 또한 말씀하고 계십니다. 회개의 열매는 징계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법도 아니며, 법관도 아닙니다. 자비로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사랑이 많은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그분이 준비하고 있는 회개의 열매는 법이 정하는 죄의 값이 결코 아닙니다. 그 아픈 순간을 통해 더 좋은 곳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회개의 열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회초리가 우리의 삶을 쳐도, 거기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향하는 순간, 모든 어그러진 것들이 다시 주님의 창조의 손길 아래 새로워집니다. 그 주님의 능력을 믿고, 온전히 회개하십시오. 값을 치르겠다는 믿음의 용기로 온전히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물론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순간에,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구하고, 곧바로 돌이켜 회개하면 금상첨화입니다. 부디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해 그러한 복된 일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길 원합니다.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져서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은사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겸손한 그 소망 안에 주님을 구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