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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고 가니라' 2016년 8월 7일 주일 설교

2016-08-07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14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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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7 오순절 후 열두 번째 주일 설교 --------------------------------------------- 사도행전 16장 35~40절, 위로하고 가니라 * 설교 음성파일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60807.mp3 (사도행전 강해 118) ‘위로하고 가니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이번에 필그림하우스에 가서 특히 좋았던 것은, 거기 도서관에서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책 몇 권을 읽을 수 있던 것이었는데요, 기독교 역사 초기의 여러 글이나 편지들을 모아놓은 것들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바로 그 시기에,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살아 있을 때 기록되어 주고받은 글들이어서, 당시 교회와 성도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죽음과 순교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잘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책들 내용 속에, 오늘 본문의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로, 당시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 있던 성도들에게는, 바울의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한 위로였습니다. 또 많은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바울의 말과 글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둠 속 빛과 같이 소중한 그 시대의 지혜였습니다. 성도와 교회 모두, 그런 영적 스승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겼다는 걸 많은 사람들의 글에서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그런 영적 리더가 너무나 필요한 때인데요, 그런 참 선지자 주시길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의 이름과 함께 또 글에서 자주 회자되던 빌립보 교회 역시,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바울이 어디를 가든, 빌립보 교회를 언급하고 다녔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당시 소아시아 스미르나(에베소 근처)에서 화형 당해 순교한 폴리카르포스라는 감독의 편지에 보면, “바울은 당시 하나님을 알았던 모든 교회에서 늘 빌립보 교회의 공동체를 자랑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바울 덕분에 모든 교회가 빌립보 교회를 잘 알고 있었고, 교회들 사이에선 ‘빌립보 교회’ 하면, 어떤 기준이나 푯대로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당시에 유명했던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많은 교회와 성도, 또 선교사들에게 기도와 물질의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고 있지요. 요즘처럼 계좌 이체 이런 게 불가능한 시절이라서, 어려운 교회나 성도를 도우려면, 누군가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구제 예물을 직접 부탁하고 받아야 했고, 그걸 다시 힘든 곳까지 전달을 해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바울이 헌신적으로 그 일을 감당했는데요, 한편으로는 자신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선교사였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복음을 전한 교회를 다시 방문해서, 힘든 교회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어려운 일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교회,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교회가 바로 오늘 이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기근과 가난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데도 빌립보 교회가 앞장섰고, 보통은 자비량으로, 즉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 선교했던 바울을 끝까지 풍성하게 후원해 준 것도 빌립보 성도들이었습니다.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어려운 교회를 돕자고 바울이 이야기했을 때, 진심으로 동참하고 함께 한 교회 역시 오직 빌립보 교회뿐이었다고 바울이 직접 말하기도 합니다(빌립보서 4:15). 본인들 역시 형편이 어렵고 궁했지만, 그럼에도 빌립보 교회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여력 이상으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환대와 구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서 수많은 초대교회들의 본이 되었던 교회가 바로 본문의 빌립보 교회였던 겁니다. 아시겠지만, 물질은 참 정직한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믿는 만큼, 내가 사랑하는 만큼, 딱 거기까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사람에게, 물질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물질만큼 정확한 게 없습니다. (*) 이전보다 더 돈 앞에 비굴해진 때여서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부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고백교회가, 돈을 주인으로 섬기고 사는 삶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리며 통치하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렇게 건강한 교회로 자라가게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바울이 오래도록 그들과 함께 머물며, 섬기고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는 곧장 그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할 때, 빌립보에 다시 방문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때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구제 예물을 요청하는 일에 쫓기던 때여서, 그리 긴 시간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서로 늘 그리워하던 바울과 빌립보 교회였지만, 함께 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빌립보 교회가 물질의 유혹을 이기고, 환대와 섬김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아마 본문 마지막 절에 기록된, 이 루디아의 섬김과 헌신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가 제일 먼저 향한 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루디아의 집이었다고 본문이 말씀하지요. 이미 루디아의 집은 성도들이 모여 교제하며 예배할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었고, 많은 성도들의 삶이 그녀를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지만, 필그림하우스 식당 옆 발코니에서 보면, 도로 반대편에, ‘루디아의 집’이라는 큰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이번에 좀 알아보니, 1, 2급 중증장애인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곳인데요, 70여 명의 장애우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당시 루디아의 집이 그런 역할, 그런 모습이었던 거겠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환대 받고 서로 섬기며,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가 루디아의 집으로 자라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꿈, 그런 선한 소망이 우리 가운데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아직 결혼 전인 여러분들도 그런 기도로 결혼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은사대로, 다양한 모습의 환대와 섬김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선한 일을 계획하시고, 시작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루디아와 달리, 집도 없고, 머물 곳도 없이 떠도는 게 바울과 실라의 삶이었지만, 두 사람은, 삶의 모습 그 자체가 루디아의 집과 같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물질이 아닌 삶이 누군가를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오늘 본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공개합니다. 매 맞고 감옥에 갇히기 전이 아니라, 다 그것을 감당한 이후에, 이젠 석방되어 나가기만 하면 되는 시점에 말입니다.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간수에게 명을 전합니다. 지진의 충격 때문인지, 더 이상 묶어둘 죄목이 없어서인지, 이제 두 사람을 풀어주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거절하지요. 자신들이 로마 사람인 이상, 직접 상관들이 찾아 와서 자신을 데리고 나가기 전에는 감옥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로마의 법에 따르면, 구체적으로는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주후 4년에 공표한 법에 따르면, 로마 시민은 재판 없이 구금될 수 없고, 모든 기소에 대해 로마의 황제에게 직접 항소할 권리를 갖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 처형은 오직 칼로만 당할 권리도 가집니다. 또 지방이 부과한 모든 세금이 면제되고, 지방의 여러 규율에 대해서도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더불어 5년에 한 번씩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 시민권을 갱신해야 한다고도 되어 있지요. 만약 거짓으로 로마 시민인 척 한 것이 적발된다면, 그때의 형벌은, 오직 사형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의 권위와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시민권을 이제 뒤늦게 적용하고 사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치를 다 당하고, 매도 다 맞고, 옥살이도 한 뒤에 말입니다. 그냥 억울하고 열 받아서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겁니다. 바울이 요구한 것이 어떤 다른 보상이나 보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저 빌립보를 통치하는 집정관들이 직접 와서 예를 갖추어 자신을 석방하고, 그들이 로마 시민인데 관리들이 잘못 일을 처리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라는 요구였습니다. 본문은, 그런 과정으로 석방된 바울과 실라가, 루디아의 집에 잠깐 들러 성도들을 만난 뒤 곧바로 빌립보를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다른 추가적인 전도나 사역 없이 곧바로 떠날 빌립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당국에 그런 요구를 한 이유, 그것은 분명 자신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남아 있는 빌립보의 성도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남아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을 위해,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명예와 그에 따른 모든 유익들을 빌립보에 남겨 두고 떠난 것입니다. 남겨진 빌립보 성도들은 너무나 미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제 막 예수 믿기 시작한 루디아와 간수와 소녀 등, 어찌 보면 너무나 연약한 사람들만이 뒤에 남겨집니다. 한 사람은 여인이고, 한 사람은 로마의 종이고, 한 사람은 아예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도시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만약 여기서 다른 어떤 조치가 없다면, 빌립보에 남은 성도들은, 바울과 실라에게 가해진 누명과 학대와 폭력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따르는 요상한 사람들’이라는 딱지가 그들에게도 똑같이 붙게 될 것입니다. 전도는커녕 미운오리새끼처럼 왕따가 될 것이 뻔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자신과 같이 매 맞고 갇히게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결코 그런 소란꾼이 아님을 또한 분명히 해야 했습니다. 남아 있는 이들의 삶과 미래를 위한 섬김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에,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마지막 위로를 전하고 떠납니다. 물질이 아닌 다른 방식의 섬김으로, 두 사람의 삶이 성도들에게 보호와 안식의 처소가 되어 준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 40절에 보면, 빌립보를 떠난 것이 바울과 실라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문장의 주어는 3인칭 복수 헬라어 ‘그들’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다만, 16장의 주어는 계속 ‘우리’는 1인칭 복수였지요. 거기에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함께 그 여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 다시 주어가 ‘그들’이 됩니다. 17장 1절에도 보면, 주어가 ‘그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빌립보에 누가가 남겨진 것입니다.     나중에 사도행전 20장에 가서 보면, 그러니까,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잠시 빌립보에 다시 방문했을 때를 기록한 장면에서, 주어가 3인칭에서 1인칭으로, ‘그들’에서 ‘우리’로 또 한 번 바뀌는 걸 보게 되는데요, 이때 다시 누가가 바울 일행에 합류하여, 예루살렘으로 동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행의 리더였던 바울은 누가를 빌립보에 남겨두기로 결정합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동역자이자 평생을 함께 하고 죽음의 자리까지 동행한 누가를 빌립보에 남겨두고 떠납니다. 늘 몸 어딘가가 아프고 불편했던 바울, 그리고 매까지 맞아 온 몸이 엉망이 되어, 의사 누가의 도움이 가장 절실했던 바울이, 그 누가를 빌립보에 남겨둔 것입니다. 누가는 오늘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을 기록한 탁월한 말씀의 사람입니다. 그의 헌신적인 섬김과 가르침 속에 빌립보 성도들이 말씀 안에 바르게 자라갔을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깊이 묵상하는 교회로 빌립보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여러분, 이때만 하더라도 아직 우리가 읽는 것과 같은 신약성경이 존재하지 않을 때입니다. 바울이 쓴 편지, 베드로가 쓴 편지,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 이런 것들이 처음 나오고, 그것들이 두루마리에 필사되어서 많은 교회로 전해지고 읽혀지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앞서도 언급한 폴리카르포스의 글에 보면, 빌립보 성도들에 대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지중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도들, 혹은 감독들에게, 그렇게 기록되고 있는 편지와 글들을 계속 보내달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소문을 듣자하니 이런 글이 기록되었다던데, 이 두루마리도 보내주시고, 저런 두루마리도 보내주십시오.” 이 글, 저 글 보내달라는 요청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폴리카르포스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저는 여러분이 성경에 정통해 있으며, 어떤 것도 놓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누가의 섬김과 양육이 빌립보 교회를 그렇게 세워갔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영적 부모의 돌봄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허덕이며 사모하고, 진리 앞에 늘 겸손하게 숙고하던 진지한 신앙으로, 빌립보 교회가 자라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자라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아시는 대로 누가는, 복음서의 저자들 가운데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던 사람입니다. 다른 세 복음서에는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직 누가복음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지요. 다른 저자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여인이나, 아이, 소외 계층, 또 장애인들에게 특히 관심과 사랑을 쏟았던 이가 누가였습니다. 그런 누가가 빌립보에 남겨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또 본이 되어 섬긴 것 역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누가의 신앙과 삶이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그대로 녹아들어가서, 빌립보의 그 유명한 섬김과 구제의 신앙이 되었을 것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와 목사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목사가 먼저 변하고 바로 서야만 성도들도 함께 자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족한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십시오. 목사는 오직 성도의 기도와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임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서, 바울은 그렇게 빌립보 교회를 위로하고 섬겼습니다. 본문 40절에 바울과 실라가 형제들을 위로하고 떠났다는 말은 그냥 좋은 말로 격려했다는 게 아닙니다. 남겨진 성도들의 삶과 미래를 돌보는 살뜰한 마음이 거기 담겨 있었고, 누가의 긴 말씀의 산고(産苦)가 녹아 있는 말, 그것이 바로 ‘위로’라는 말, ‘파라칼레오’입니다. 다 아시는 대로, 이 ‘파라칼레오’의 명사형 ‘파라클레이토스’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볼까요? ‘파라클레이토스’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오늘 바울과 실라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땅에 남겨진 우리의 삶과 미래를, 미리 준비하시는 ‘위로’입니다. 내가 당할 어려움을 미리 아시고 예비하시는 위로, 그리고 우리 곁에 남아 성부와 성자의 빈자리를 채워주시는 위로. 언제나 동행하시고, 함께 하시며, 우리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 함께 거하시는 위로. 그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위로, ‘파라칼레오’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조금 유치하지만, 제가 주중에 겪은 작은 ‘파라칼레오’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번 한 주, 제 안에 ‘아갈리아오’의 기쁨이 점점 더 소멸되어 갔습니다. 필그림하우스에 쉬러 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이유 없는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쉼에 뒤따르는 카라는 있는 것 같은데, 영혼의 아갈리아오는 사라져 갔습니다. 그래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아갈리아오 안으로 저를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저를 사랑하심을, 주님이 저를 기억하심을, 주님이 제가 이 땅에 태어남을 기뻐하심을 알게 하시고, 그 기쁨 안에 저도 거하게 해 주십시오. 저를 ’파라클레오‘ 해 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제 생일이 화요일이었는데요, 당연히 필그림에 있으니 이번엔 생일 미역국은 못 먹겠구나, 싶었습니다. 평소엔 관심도 없는 미역국인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그냥 미역국을 꼭 먹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 생일 저녁 필그림하우스 메뉴가 ‘쇠고기 미역국’이었다는 것 아닙니까? 참 별 것 아니고, 많이 유치한 것 같지만,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여러분은 아마 상상하지 못하실 겁니다. ‘주님이 나를 기뻐하시는구나,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나를 돌보시는구나, 내 마음과 생각을 미리 아시고 예비하시는구나.’ 느껴져서 아내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특별히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 미래를,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그 때의 순간을 위해, 쉼 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로하시기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십니다. 우리 안에 다시 아갈리아오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오늘도 성령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머무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몸과 삶이, 성령의 집, ‘파라클레이토스의 집’이라 합니다. 루디아의 집처럼, 위로의 집이라고, 누군가를 위한 ‘파라클레이토스의 집’이라고 규정합니다.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또한 다른 누군가를 돌보고 위로하는 존재임을 말씀합니다. 누군가 당할 고난을 미리 알고 그들을 위해 미리 손 써주는 위로입니다. 그냥 쿨 하게 떠나도 될 것을 굳이 내가 로마 사람입네, 뒤늦게 따지고 티내는 그런 어색함과 유치함으로 섬기는 위로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서로를 대하라고 우리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게 너무나 소중한 무언가를 내려놓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누가를 남겨두고 떠나는 바울의 위로. 그 위로로 서로를 돌보는 삶이 되라고, 주님은 우리를 복 주시고 위로하십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로 시작된 빌립보 사역이 오늘 풍성한 위로와 함께 일단락되었습니다. 비록 가시적인 고난과 억울한 아픔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다시 살아내는 제자의 삶도 보았고,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성도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성도만이 누리는 ‘아갈리아오’의 큰 기쁨도 배웠고, 어떻게 성도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또 다른 위로자로 자라가는 지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빌립보의 스토리가 우리 고백교회의 스토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신 말씀대로, 우리 가운데 이루어 가실 주님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송합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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