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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은 사람" 2014년 2월 14일 새벽기도회 설교
2014-02-14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7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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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설교 원문
20140214 금요일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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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장 10~11절, 이사야 강해41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은 사람)
* 음성 : http://www.4shared.com/mp3/mZpqf2jFce/20140214_.html
이사야서 마흔한 번째 말씀으로,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계속되는 심판의 메시지 가운데 오늘 본문 10절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새로운 빛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비록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부분을 대조시켜 보여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기는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견책 속에서, 의인을 언급하고 그에게 주실 축복을 약속하시는 이 말씀에서 느끼는 반가움은 여간 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에게도 그와 같은 반가움이 있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어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없는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바르게 순종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찾고 찾는 관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찾고 구하지만, 하나님 역시 잃어버린 자녀도 찾으시고, 또 오늘 말씀과 같이 의롭고 순전한 자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찾으실 때의 기쁨에 관하여 하나님은 잠언 25장에서 이렇게 밝히고 계십니다. 13절인데요, 함께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아멘.
충성된 일꾼이 하나님에게 어떤 의미와 기쁨인지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묘사한 곳이 또 있을까 싶은 그런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어서 물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습기가 적고 건조하기 때문인데요, 성경에서 물에 관한 내용이 유독 많은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지리적인 특성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큰 강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단강과 같은 이스라엘의 강은 수량이 매우 적어서 농사에 사용하기도 어려운 정도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농사는 우기에 내리는 강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지요. 그나마 내리는 빗물의 70%가 증발하고 지하로 들어가 지하수가 되는 물은 고작 20%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물이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상상이 되고도 남지요. 그래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존재는 물론이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기쁨을 표현할 때에도 항상 비유로 생수가 사용됩니다. 예레미야 2:13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가리켜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구원을 생수에 비유하신 바 있습니다. 생수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비유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잠언의 말씀은 이보다 더 강력한 비유로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와 같다는 표현입니다. 덥고 건조한 근동 지역에서 추수는 기쁨의 때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냉수라니 얼마나 귀하고 또 얼마나 간절한 것일지,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사실 여기 얼음냉수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본래 ‘눈’(snow)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의 경우, 이 본문을 조금 다르게, “믿음직한 심부름꾼은 그를 보내는 주인에게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아서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라고 번역합니다.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 정말 낯선 표현이지요?
사실 이스라엘은 거의 눈이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성경은 그것을 얼음냉수라고 조금 변형하여 옮겼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영어 성경도 다 snow로 번역합니다. 작년 겨울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눈이 왔다고 뉴스에 나온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이집트에는 112년만이라고 하고, 이스라엘은 70년만이라고 하니, 아마 그 지역에서만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평생 눈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눈’은 단순히 냉수의 의미만은 아닙니다. 아마 우리에게는 ‘추수철의 눈’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고 낯선 표현입니다. 보통 가을에 추수를 하니까요. 하지만 이스라엘의 추수 계절은 우리와는 조금 다릅니다. 밀의 경우, 이스라엘은 여름에 추수합니다. 하지만 다른 작물의 경우는 비가 집중되는 겨울에 파종하여 봄에 추수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역시 이때와 연관이 있습니다. 파종하는 시기인 10월에서 11월에 이른 비가 내리고 이후 겨울 장마가 12월에서 2월 사이에 내립니다. 그리고 봄비인 3, 4월의 비가 늦은 비인데, 좋은 결실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중요한 비이지요. 따라서 추수할 때의 눈이라는 것은 거의 보기 힘든 현상입니다. 한겨울도 아니고 3~4월의 눈이니까, 평생 한 번도 보기가 어려운 일이지요.
여러분, 그러니 잠언에서 기록하는 추수할 때의 눈이라는 의미는 어떤 속뜻이 있는지 이해가 되시겠지요. 힘든 일을 하며 마시는 한 잔 시원한 물로서, 정말 필요하고 간절한 대상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찾고 또 찾아도 정말 찾기 힘든 그런 극소수의 사람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유대 땅 한가운데 봄에 내리는 눈을 찾듯이, 하나님은 이 땅 가운데 당신의 참된 자녀와 일꾼을 찾으십니다. 그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고 깊을지 우리는 잠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온전한 의인 10명만으로 소돔 성읍 전부를 구하겠노라고까지 말씀하시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런 순전한 의인 몇 사람의 존재에 우리의 평화와 복을 빚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땅 어딘가에서 남모르게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 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그 누군가의 삶으로 인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 덕분에 진노를 피하기만 하면 족합니까? 저와 여러분이 정말 그와 같은 순전한 일꾼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진정 주님이 찾고 찾는 존재감 있는 일꾼이 되십시오. 그와 같은 모습을 사모하십시오.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은 사람,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목사인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말 그런 일꾼이 되어야겠다, 또 저희 고백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밭은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어 가는데, 그래서 이제 늦은 비가 너무나 간절히 필요한데, 여러분,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시는지요? 그 타들어가는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의 삶이 한줄기 생수와 같은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삶은 어떤 특별하고 다른 삶이 아닙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그처럼 찾고 구하는 삶이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어떤 대단한 일을 하고 큰 업적을 이루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서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은 사람이길 원한다면, 하나님이 먼저 여러분에게 그와 같은 간절한 존재가 되는지 짚어 보십시오.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이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할 리가 없습니다. 나의 모습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더 주님을 간절히 부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이끄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꼭 마음에 품고 새기고픈 말들이 생기곤 합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말씀은 입에 늘 담아두고 중얼거리며 계속 반복하여 묵상하면 좋습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글로 써보기도 하면 더 깊은 말씀의 뜻이 드러나기도 하고, 내 마음에 자연스럽게 새겨집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나로 하여금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의지도 주십니다. 오늘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씀도 그렇게 우리의 마음과 삶에 새기면 참 좋겠습니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말씀을 읊조리며, 기억하며, 거기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님들과 여러분이 속한 교회와 또 우리 고백교회가 어지러운 이 땅 가운데, 무더운 추수철의 시원한 눈과 같은 사람, 하나님이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복된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