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의 바탕이 된 설교

'기록된 글' 2015년 7월 2일 새벽 설교

2015-07-02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강조된 문장은 Q&A 답변의 근거입니다. 앞뒤 문맥을 포함한 설교 전문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된 설교 원문

20150702 목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38장 9~20절,  이사야 강해 301  기록된 글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702.mp3 이사야서 삼백한 번째 말씀으로, ‘기록한 글’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다소 긴 분량의 오늘 본문은 9절에 기록된 대로, 히스기야가 병이 다 낫고 난 후에 기록한 글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밐타브’라는 단어가 9절 맨 처음에 나오고 있는데요, 우리가 보통은 시편에서 ‘믹담’이라는 말로 많이들 보게 되는 그런 표현입니다. 사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그 어원이 ‘쓰다’, ‘기록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한글성경처럼 ‘기록한 글’이라는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이 다 낫고 난 후, 히스기야는 자신이 경험한 내용들을 일종의 시의 형식을 빌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분명 아닙니다. 큰 병과 같은 정말 큰 위기로부터 벗어났을 때, 혹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구하고 응답이 되었을 때, 여러분은 그 내용을 기록하여 남겨두었던 적이 있습니까? 그때는 정말 목숨처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본인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더해졌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을 잘 정리하여 기록해두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계속 전진해가고 있고, 분주하고 복잡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한 CF에서 본 듯한 말인데,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정확한 기록은 불완전한 우리의 기억을 대신할 가장 좋은 역사입니다. 반대로 기록이 없는 한, 과거를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이란 항상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되기 쉬운 연약한 존재입니다. 저는 오늘 히스기야의 이 긴 글을 읽으며, 그 긴 내용은 차치하고, 그냥 그의 이 기록 자체가 참으로 도전이 되고, 저 자신을 반성하게 했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그에게는 산적한 국사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고, 하고는 싶었지만, 그동안 아파서 하지 못한 많은 일들도 있었을 겁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리고 이사야라는 훌륭한 선지자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굳이 본인이 직접 이러한 기록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목도했던 상황과 거기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한 절, 한 절, 정성스레 기록해두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만, 내용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를 고치셔서 기쁘고 감사하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의 대부분의 내용은 병에 걸려 죽음 앞에 서 있던 그때의 절망적인 상황, 벽 앞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아파하던 그때의 순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어제까지 살펴 본 하나님의 징조나 기적에 대한 이야기도 빠져 있습니다. 오직 자신이 고통 가운데 있던 그 탄식에 초점이 맞춰진 기록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있을 때 그저 그 결과와 그에 대한 감사를 적어 기록하는 우리의 습관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방식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망 없는 상황이었고, 얼마나 어둡고 고통스러운 터널 안에 갇혀 있었는지를, 히스기야는 아마도 온전히 기억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기억과 기록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반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의 개인적인 상황 속에서도 비슷한 긴 어둠이 있었고, 절망, 죽음 이런 단어 외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기도조차도 잘 나오지 않던 그런 시절, 그러나 하나님이 결국 구원의 길을 허락하셨고, 지금 이렇게 주님 앞에 과거의 기억으로 편하게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그때 그런 아픔을 담은 기록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막연한 제 기억과 이런 뒤늦은 감사의 고백밖에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은혜와 감격이 언제 사라질지, 어떻게 변질되어 또 나의 의로 기억될 지, 저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남겨두는 것은, 그의 신앙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좋은 방증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겠다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보다 주신 바 된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그 삶의 우선순위가 이러한 기록을 남기게 합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것처럼, 히스기야는, 세간에 떠돌던 솔로몬의 잠언들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도 유명한 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묵상한 기록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 자신은 물론이요, 나의 가족, 나의 자녀, 나의 믿음의 벗들에게도 그것이 얼마나 귀한 또 하나의 은혜가 되는지를 히스기야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본문의 이 기록은 처음부터 계속 1인칭 단수로 말해지다가, 결국 20절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라고 하는 복수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이 히스기야 개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훗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적으로 낭독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저는 언젠가 여러분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도, 내가 과거에 기록했던 그러한 믿음의 글들을 함께 읽고 묵상하며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신앙의 교훈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소멸해가는 삶이 이어질 때, 과거의 열정을 그저 추억으로 여기며 살아갈 때, 그때 다시 우리 안에 복음의 불꽃을 타오르게 할 그런 삶의 기록들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도 계속 쓰여져 나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 돌에다가 새길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흐르는 물에 담아 떠나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도는 오직 은혜로 살고 은혜로 버텨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들을 잘 활용하고 개발해서, 주신 은혜를 잘 보존하고 되새길 수 있는 그런 저와 여러분의 젊은 세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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