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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2015년 6월 8일 새벽 설교

2015-06-08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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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된 설교 원문

20150608 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37장 14~20절,  이사야 강해286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608.mp3 이사야서 이백여든여섯 번째 말씀으로,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급해지고 시야가 좁아져서 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집니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이 좋다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정작 정말 중요하고 다급한 상황에 처했을 땐, 그 얕은 밑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신앙과는 무관한 결정이나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고난은, 성도의 신앙을 시험하고 분별해내는 좋은 기회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기록된 이 본문의 기도, 히스기야의 이 기도는, 그가 얼마나 평소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는가, 그가 얼마나 기도의 사람이었는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신앙의 견고함과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히스기야의 이 기도는 아시는 대로 앗수르 산헤립의 강력한 도발과 위협 가운데 나온 기도입니다.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토해내진 기도입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다급한 기도일지 그리 어렵지 않게 예상이 갑니다. 하지만 본문을 잘 들여다보면 그런 다급함이나 위기감이 잘 느껴지지를 않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의 기도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을 만큼, 담담하고 냉정한 느낌이 기도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안전이나 유다의 승리를 기원하는 내용이 전혀 없는 기도라는 점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아마 저 같으면,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를 살려주소서. 이 백성이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뭐 이런 기도를 드렸을 게 뻔한데, 보시는 것처럼 히스기야의 기도는 그런 류의 기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히스기야는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지금 그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작인 16절은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를 찬송하는 하나의 찬송시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룹, 그러니까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며 파수하는 천사들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천지를 만드신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17절에서 하나님께 보고 들으실 것을 요구하는 장면에서도,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히스기야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훼방한 사실에 집중합니다. 18, 1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산헤립이 그토록 강조했던 바, 주변 나라들을 정복한 그 일을 두고도, 멸망한 그 나라들이 믿는 신들은 참 신이 아닌 우상이기에,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이 나타날 때임을 강조하며, 하나님이 그 목적을 위해 이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모든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과 그 영광임을 히스기야는 일관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명확히 들으십니다. 본문 21절 끝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지요. “히스기야,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제대로 들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히스기야의 기도가 얼마나 하나님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어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줍니다. 나중에 그 말씀들도 함께 묵상을 하겠습니다만, 말씀의 핵심은 결국,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앗수르는 다만 그 모든 것의 도구에 불과하며, 결국 하나님께서 계획한 일들이 완성되고 성취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본문 35절까지 길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잠깐 그 부분을 읽겠습니다. 다같이 35절 함께 읽습니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아멘. 이 전쟁을 히스기야가 이기게 하시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은 두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며” 그리고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애석하게도 거기 히스기야의 이름이나 지금 유다 백성들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전쟁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전쟁임을, 하나님을 위한 전쟁임을 시종일관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 갑자기 다윗의 이름이 왜 등장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만, 우리는 한 가지 꼭 기억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기도가 과연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와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우리의 기도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오늘 이런 기도를 드려본 적이 언제입니까? 해결해야 할 다급한 문제나, 바라는 것들을 앞에 두고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처럼,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예수를 믿는 성도들 가운데, 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을 가진 삶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교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정말 그런 삶을 사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늘 내가 영광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 일하며, 수고하지, 하나님의 영광? 그건 너무 멀고 어려운 이야기로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기도는, 내가 속상하고, 내가 수치를 당하고, 내가 실패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하나님이야 어떤 취급을 받든 말든, 하나님의 이름이야 이 땅에서 어떤 멸시와 조롱을 당하든 말든, 그저 나만 잘 되면 되는 인생이기 위해 예수를 믿고, 기도도 합니다.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서도, 그 기도의 중심과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사실에 우리의 묵상의 초점이 맞춰집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기도가 정말 바른 기도인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합당한 기도인지, 우리의 기도를 말씀의 빛 앞에 천천히 비추어보는 것 역시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신앙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 비친 우리의 신앙, 그것이 과연 바른 신앙인지, 아니면 형태만 달라진 미신이나 점술은 아닌지, 혹 우리의 기도가 점집에서 파는 부적 같은 싸구려는 아닌지, 다시 한 번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내일 말씀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잠깐 기도합시다.
↑ 설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