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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모으시리라" 2015년 2월 23일 새벽 설교

2015-02-23 · 게시된 설교 원문 · 약 5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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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3 월요일 새벽기도회  ---------------------------------------------- 이사야 27장 12~13절,  이사야 강해220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 설교 음성 : http://file.ssenhosting.com/data1/kafka21th/20150223.mp3 이사야서 이백스무 번째 말씀으로, ‘하나하나 모으시리라’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조금 오래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이사야 27장은 포로로 잡혀갔던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의 날, 회복의 날이 이르러, 회복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27장의 마지막 두 절은 그런 회복의 메시지의 요약과 결론에 해당하는 그런 부분입니다. 그래서 내용이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의 회복에 대해 하나님이 그 백성을 하나하나 모으시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2절에 보면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마치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백성들을 하나하나 모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아래 관주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여기 창일하는 하수는 유브라데 강을 의미합니다. 당시 세상의 시작점이라 여겨졌던, 그리고 당시 근동의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유브라데 강, 그러나 지금은 앗수르의 통치 아래 있는 바로 그 강으로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모으십니다. 또한 앗수르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미리 애굽으로 피해갔던, 그래서 타국에서 망명자로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백성들도 하나님은 이제 모아들이십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지경에 흩어져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일일이 남김없이 모아 회복케 하시겠다고 오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이사야는 마치 ‘과실을 떠는 것 같이’ 하나님이 모으신다고 비유하여 이야기합니다.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의 간절한 마음으로, 한 알의 이삭도 흩어지거나 버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그 정성으로, 일일이, 하나씩, 모으십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같은 두 단어의 반복으로 강조된 구절입니다. ‘아하/드, 에하/드’(אַחַד אֶחָד), one by one, 하나씩 다 구별하여 주님이 각 사람을 불러 오시는 것이지요. 주님의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종을 보내어 당신을 죽이고 박해하는 사울을 친히 구별하여 부르시고 세우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각 사람을, 마치 아담 홀로 에덴에 있는 것처럼, 오직 단 하나의 유일한 자녀처럼 그렇게 기억하셔서 오늘도 부르고 모으고 계십니다. 이 새벽에 드리는 수많은 기도와 예배와 찬송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일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저 성도들의 삶으로 뭉쳐져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일일이 구별하여 하나님이 부르시고 기억하심을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각 사람을 부르시는 목적,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케 하기 위함이라고 27장 마지막은 말씀합니다. 예배하다, 여기서는 히브리어 ‘소ㅑ하’의 번역이 예배인데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나의 주로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모으시는 이유, 회복케 하시는 이유, 그 이유는 아주 간결하고 명쾌합니다. 그 대상이 한 사람의 인생, 삶이든, 아니면 공동체와 국가적인 것이든, 그가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회복의 날을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예배자로 부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속하고 회복케 하셨음을 믿으십니까? 지금 이스라엘은 우상의 예배자로 살다가 다시 회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다, 결국 그 우상의 노리개로 전락한 아픈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자일 땐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지만, 우상을 섬기는 예배자일 땐 그들의 종으로 전락하여 한없이 망가지는 인생이 됨을, 그들은 몸소 겪어 깨닫고 후회했습니다. 이제 다시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성산으로 돌아오며 그들은 다짐하고 또 결단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예배자로 서겠노라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바른 예배자의 길을 걷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엄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구별된 나의 주로 바르게 인정하는 것을 말씀하는 겁니다. 수많은 세상의 우상들과 똑같이 주를 대하던 그 모습을 이제 포기하는 삶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스라엘처럼 우상의 종으로 전락하고 난 후 깨닫는 아픈 인생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그저 주일 하루만, 그 예배의 시간 한 시간만 예배자로 서고, 나머지 일주일의 시간, 백예순일곱 시간은 우상숭배자로 전락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시간 모두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뻐할 수 있는 여러분의 일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드리는 뭔가에 여러분의 마음이, 중심이 담기기를 원합니다. 누군가에게 드리는 것을 어찌 적당히 대충 고를 수 있겠습니까? 정성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대충 건네는 선물은 상대방의 인격을 상하게 합니다. 차라리 주지 않은 것이 더 나은 선물도 있는 겁니다. 사람도 받지 않을 정성, 내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내 삶이 바른 예배로 드려질만한 그런 삶인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이 없어 여러분을 예배자로 부르시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작되는 사순절, 그래서 구별됨이 필요하고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일일이 구별하여 부르시듯, 우리 삶의 시간과 공간들도 하나하나, 일일이, one by one, 세밀하게 살피고 구별하여 바르게 하나님 앞에 드려보십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드는 그 시간들 하나하나를 잘 돌아보며 우상에게 드려지는 때는 없는가 살펴봅시다.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자리들 속에 더럽고 추한 죄의 자국들이 남아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발길이 머무는 자리들도 일일이 더듬어 보십시다. 그래서 2015년의 사순절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회복의 시간, 다시 새로워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 가십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써 놓고 준비하고, 예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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